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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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공연예술가 팝핀현준
- 치열한 노력파, 열정의 멀티아티스트
공연예술가 팝핀현준
희극인이자 작가이며 배우,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찰리채플린. 우리는 그를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춤꾼이자 안무가, 노래, 미술작업 등 폭넓은 활동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팝핀현준도 자신을 어느 한 영역에 머물지 않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예술을 향한 폭발적인 에너지로 한류의 중심을 걷고 있는 그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돌아본다.
“저는 춤, 노래뿐만 아니라 그림도 곧잘 그려요. 잡지에 그림을 연재하기도 했으니 화가란 직업도 있는 셈이죠. 영화에도 출연 했었고요. 공항에서 출입국 할 때 직업을 뭐로 쓸지 항상 고민했어요. 어렸을 때는 댄서라고 썼고 그 다음엔 안무가, 나중에 앨범 내고는 싱어, 엔터테이너라고 썼죠. 지금은 그냥 아티스트라고 쓰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특히 춤에서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팝핀현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전문 댄서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면서도 댄서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춤에 깊은 열정을 갖게 된 것은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부터다.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고, 제가 혼자 남겨져서 갈 곳이 없었어요. 그게 17살 때의 일이에요. 친구들이 저보고 거지라고 놀리고, 학교도 못나가고 길거리에서 웅크리면서 잤지요. 영양실조에 걸려 머리와 손톱이 다 빠져버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춤을 췄는데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한테 돈을 주시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춤에 소질이 있구나’하고 느꼈어요. 소풍날 장기자랑으로 추던 춤에 대한 생각이 진지하게 바뀌는 순간이었죠.”
그는 거리에서 매일같이 춤을 추었다. 그러면 친구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고 환호를 보내주기도 했다. “제 춤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저의 재능을 알게 되었고 춤을 직업으로 삼으면 잘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흘러흘러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런 인연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인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비보이 1세대 중의 한명으로서 1998년 ‘영턱스 클럽’의 객원 멤버로 얼굴을 알렸고, 조PD의 ‘친구여’라는 뮤직비디오에서 강렬한 춤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뛰어난 춤 실력으로 광고에도 자주 등장했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공연을 다니는 전문 춤꾼으로 비보이들에겐 존경받는 선배가 되었다. 흐르는 세월동안 좋은 세월과 침체기가 나란히 공존했지만 팝핀현준의 노력은 언제나 남달랐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춤출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결핍”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저는 2년 동안 거리의 노숙자로 지냈어요. 그런 제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춤을 잘 추는 길밖엔 없었어요. 연예인 된 뒤에도 학벌도 연줄도 없는 제가 순수한 실력으로 살아남으려니 정말 치열할 수밖에 없었죠.”
팝핀이라는 생소한 댄스 이름을 예명에 사용하는 이유는 팝핀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팝핀댄스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장르예요. 엄연히 팝핀이라는 세계 공통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각기춤이라고 불러왔죠. 이걸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제 이름 앞에 팝핀을 붙인 거예요.”
댄스의 종류가 많지만 팝핀댄스는 모든 걸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끌렸다고 한다. “제가 독일에서 한번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도 춤을 출 수 있는 게 팝핀이에요. 일상의 모든 움직임을 컨트롤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게 없죠.”
팝핀댄스는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서 몸이 딱딱 끊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손목, 팔꿈치, 어깨, 가슴 등 몸의 각 부위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를 준다. “여러 가지 테크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로봇춤, 웨이브, 문워크 춤 등이 가장 대표적인 팝핀의 형태에요.”
매순간 춤을 추며 보람을 느끼지만 유독 춤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람들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발레, 현대무용도 아니고 ‘팝핀’ 그거 골목에서 추는 저급한 댄스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대에선 백댄서라고 폄하하고요. 사실 가수나 댄서나 무대엔 모두가 필요한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세월이 가도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정말 슬퍼요. 미국에는 백댄서라는 말 자체가 없어요. 그냥 댄서라고 하죠.”
팝핀현준은 중단된 공부를 마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도 2번이나 옮기면서 학업을 마쳤다. 댄스를 하는데 딱히 학벌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미 성공한 예술가인데도 그가 공부를 계속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검정고시를 안보고 고등학교를 다닌 건 단체생활을 경험하고 싶어서였어요. 학교생활을 안 해봐서 제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학에 간 이유는 춤꾼이지만 제 철학을 갖고 싶었고, 춤이라는 장르를 더 깊게 들여다보고 살찌우기 위해 예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게 대학에서 가장 시스템화 되었기에 대학교육을 선택한 거죠.”
그는 춤이란 순수하게 좋아해서 시작해야지, 그것으로 다른 무언가를 바란다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떤 아이가 비보이 춤, 힙합 춤, 스트릿 댄스를 춰서 돈을 벌고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지식인’에다가 물어봤어요. 근데 거기 답변에 ‘팝핀현준 같이 유명한 예술가가 되시든가, 아니면 작품을 만드셔서 작품을 파십시오.’라고 답을 다셨더라고요. 그러면 애들이 ‘팝핀현준 같이 유명해지면 돈을 벌 수 있는 건가?’하고 도전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정말 기회가 좋았고, 운이 좋았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시대를 잘 타고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서태지와 아이들도, 마이클 잭슨도 마찬가지죠. 그런 것같이 그 시대 때 만들어지는 사람들은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거든요. 솔직히 춤춰서 세계대회 1등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 상금을 안 줄 때도 있어요. 관객이 없어 예상됐던 수익을 못 냈다고 상패만 가져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는 국내 비보이 팀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그만큼 선배로서 책임감도 무겁다. 미래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앞으로 꾸준히 앨범을 내고 제가 가진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솔로 팝핀현준도 되고 팀으로 만들 수도 있고, 아내와 함께 듀엣을 할 수도 있죠.”라면서 나이가 들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한다. “저희 같은 춤꾼들도 안정적인 직업인으로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댄서가 되려는 청소년들이 많다. 댄서가 되려면 우선 춤을 정말로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자질보다는 끈기가 가장 필요하다. 끈기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1년 전에 연습실에서 저랑 함께 했던 친구들이 30명 정도였는데 다들 그만두고 지금은 저만 춤을 추고 있어요.”
몸치라면 댄서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운증후군 친구들에게 댄스를 가르쳐서 그리스 폐막식 올림픽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때 오로지 춤 하나로 넓은 메인 스타디움의 7만 명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느낀 벅찬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댄서가 직업으로서도 앞으로 전망이 있다고 내다봤다. 삶이 윤택해지면 춤을 배우거나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로봇이 대체하는 세상이 와도 예술은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미래가 유망하다고 해도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 댄서라고 힘주어 말한다.
팝핀현준은 이 일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꿈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댄서든 가수든 되고 싶은 꿈을 향해 그만큼 노력해야죠. 꿈만 꾸고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변 환경을 탓하기보다 여러분이 꾸는 꿈을 책임을 지고 그만큼 노력하는 멋진 청소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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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가치공유컨설턴트
중장년의 가치로 중소기업의 가치를 높이자
김훈(65세) | 창직 아이템 :가치공유 컨설턴트
가치공유컨설턴트는 어떤 직업인가요?
전문업무종사자가 퇴직 후 자신의 분야 기업체에서 쌓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등에게 업무를 지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문제해결을 컨설팅해주는 직업입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도 대기업처럼 좋은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올리고 생산성을 높여야겠지요. 대기업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문제인데도, 중소기업에겐 회사의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솔루션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간단한 기계고장 수리방법에서부터 전문 업무 수행이나 제품생산 중 문제 발생 시 조치내용을 컨설팅해주고 직접 방문이 어려우면 스마트 폰으로 화상통화를 통해 원격으로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중입니다. 또 유사사례가 탑재되어 있는 검색엔진을 통해 고객이 직접 문제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서 볼 수도 있습니다.창직 아이템으로 선정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이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역량을 쌓은 퇴직자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라 생각했습 니다. 현장의 전문성을 갖춘 분들의 노하우는 어떤 책자나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보물같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책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서 빈번하게 부딪히는 문제들을 이분들은 체감하여 잘 알고 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요. 미국에선 다양한 업종에서 이미 활성화가 되어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창직을 사업화 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2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무했었고 중공업, 전자, 정보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7년간 공부하기도 했었구요. 또 2002년부터는 작게나마 회사도 운영하고 있는데 창직아이템과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유사사례검색(CBR)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으로 전문경험, 제품생산 및 품질관련 사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입니다. 현재의 상황과 가장 유사한 과거 사례를 찾아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지요. 유사한 일을 했었고 이것을 중장년의 경험과 결부한 컨설팅으로 발전시킨것이 바로 저의 창직 아이템입니다. 현장 경험이 충분히 있고, 시장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보니 다른 분들보다 예상되는 어려움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인지요?
퇴직자들, 혹은 본인의 일에 경험있는 사람들이 모인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중장년의 노하우와 경험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고 귀한 것이지만 이 분들이 실제로 고객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컨설팅과 관련하여 태도, 자세, 기법 등을 잘 알기 위해 배우고자 합니다. IT는 그동안 해킹, 보이스피싱 등의 역기능도 많았지요. 컴퓨터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순화되고 평화를 누리고 행복과 안정,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삭막한 컴퓨터 안에 가치 있는 경험이 쌓여 있고 그 가치를 누군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누군가 첨단기술로 옆에서 도와주면 훨씬 생산성도 높고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절된 아이디어와 경험을 이어주고 싶고, 가치로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포부입니다.창직을 고민중인 중장년층에게 전할 말씀은?
물론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할 때까지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또 주위의 반대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교훈을 구해야 합니다. 왜 반대를 하는지... 그리고 창직 아카데미나 창직 관련한 강좌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창직은 책상에서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들어야 좋은 아이템도 만들어집니다. 또한 중장년층도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IT 기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기도 하니까요. 젊은이의 감각도 높게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혹 본인의 아이디어에 젊은이가 코멘트를 한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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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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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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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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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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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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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애완동물교육전문가
이웅종 | 이웅종컴퍼니 대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교육프로그램과 이벤트로 호응도 높여
현재 게임을 통해 반려동물 교육을 자연스럽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중입니다. 레크레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아지 복종교육을 시켜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게임 등으로 자연스럽게 교육과 연결시키므로 효과도 큰 편입니다. 또한 반려견의 행동에 대한 강의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고 방송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그 외 반려문화축제를 통해 반려동물, 장애인, 독거노인, 청소년, 반려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전국각지의 반려견운동장 만들기 추진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늘 반려동물과 관련한 풍부한 경험으로 창직에 도전
천안연암대학 동물보호계열 교수로 활동을 하고 각종 애견행사에서 반려동물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유기동물 희망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고 방송프로그램에서 반려동물의 문제행동을 수정하는 것도 담당했었습니다. 또 반려동물과 관련한 공연기획연출도 맡았고요. 모두 반려동물과 관련된 일이지요.동물을 좋아하던 소년의 과감한 도전과 성공
어릴 때 소나 돼지를 기르고 닭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는데 가정형편상 꿈을 포기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늘 동물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많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장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일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꿈을 찾아 도전하였고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의 꿈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드라마 대본을 보게 되었는데요.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드라마처럼 역할극을 통해 반려견과 함께 소개하면 아주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공연에서 진행해본 결과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고 교육적 효과도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냥 생각에서 그치기보다 실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였고요.생소한 분야를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작업이 가장 힘든 여정
예전엔 애견분야의 사업은 생소한 분야여서 제안서를 만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 개와 함께 공연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하면 반대하는 담당자들이 많았지요.
무슨 일이든 처음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다른 분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려견 이벤트나 공연설계를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고 성공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공연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개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므로 안전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계셔서 교육 프로그램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고 감수성, 행복감,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데 중점을 두면서부터 제 사업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반려동물과 관련한 창직,이것만은 유념해야
반려동물 이벤트나 반려문화 축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면 반려견의 행동습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또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사고예방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반려동물 문화행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여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도 거의 없고 주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는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관련된 행사도 많이 가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반려동물의 스타, 상근이
전 사실 상근이 아빠로도 유명했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특히 상근이는 스타견으로 인기도 아주 높았지요. 상근이와 같은 그레이트 피레니즈는 모두가 상근이로 불려질 만큼 인기가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상근이라는 진짜 사람들의 이름을 가지신 분이 ‘제가 상근이요’ 라고 전화하는가 하면 어느 지역에서는 ‘1박2일’프로그램에 나오는 상근이라고 하면서 5천 원 씩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지요. 또 제가 어느 정도 유명해지니 저를 사칭하거나 저의 스승이라거나 제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창직, 실천에 옮겨야 후회가 없다
성공했다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와 노력이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남들이 이야기한 것을 그냥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바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창직을 고민 중인 여러분도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설령 실패가 있다 하더라도 도전을 통해 후회는 하지 말아야합니다.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자체가 절반의 성공
새로운 일에 도전을 준비 중인 분들은 이미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마시고 스스로를 믿으세요. 내가 내 자신을 믿지 못하면 남도 나를 믿지 못합니다.
누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결과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면 그것이 성공적인 삶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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